중세의 끝자락, 중앙아시아의 초원에 새로운 제국이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 붕괴 후 분열과 혼란에 빠진 대지, 그곳에서 티무르가 이끄는 군단이 일어섰죠. 칼과 예술의 힘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한 제국, 사마르칸트로 상징되는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아시아의 알렉산더로 불리는 티무르와 그가 세운 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티무르의 등장과 제국의 기반
14세기 중엽, 중앙아시아는 잦은 전쟁과 반란으로 대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의 분열 이후 군웅할거가 극심한 시기였죠. 이때 차가타이 칸국의 일개 부족장으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바로 티무르입니다.
본명은 티무르 이븐 타르가이. 툭테미쉬 칸을 몰아내며 차가타이 칸국 전역을 평정하고 제국의 기초를 닦았어요.
티무르는 1370년 사마르칸트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습니다. 이 명도시를 거점으로 티무르는 광대한 제국을 일궈내는데요.
파괴와 학살로 점철된 잔혹한 정복 전쟁이었지만 군사적 천재성만큼은 두드러졌습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소아시아, 인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했죠.
전성기엔 페르시아만에서 갠지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티무르의 통치 전략은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정통성을 내세웠지만, 동시에 투르크와 이란계 지배층을 적극 포섭했어요.
군사력과 행정력의 뒷받침이 절실했던 까닭이죠. 또 장인과 예술가, 학자들을 중용해 문화 정책에도 힘썼습니다. 정복지의 재화와 인재를 수도로 집결시켜 제국의 기반을 공고히 하려 한 것이죠.
2. 사마르칸트, 찬란한 문화예술의 중심지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교역의 요충지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티무르 시대 들어 그 위상은 절정에 달합니다.
‘동방의 진주’, ‘이슬람 문화의 메카’로 찬사를 받은 중세 최고의 도시. 그 화려함의 전성기가 바로 이때였죠. 티무르는 원정에서 막대한 재화와 인력을 사마르칸트에 쏟아 부었어요.
레기스탄 광장을 중심으로 빼어난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섰는데요. 가장 압권은 역시 티무르의 능묘인 구르 에미르 묘입니다.
푸른 색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돔은 ティ무르 왕조의 위용을 상징하듯 웅장한 자태를 뽐냅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과 기하학 문양의 조화로움은 중앙아시아 건축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죠.
샤이 진다 사원과 비비 하눔 모스크 등 대규모 건축물들도 잇따라 세워졌어요. 티무르 때 만들어진 도시 구조와 건축 양식은 후대에도 모범이 되었죠.
실크로드를 통해 들여온 중국의 도자기와 금속 공예, 파사드 양식 등이 토착 문화와 융합하며 독특한 예술 세계를 꽃피웠습니다.
사마르칸트의 예술혼은 문학 분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어요. 티무르의 후원 아래 시인 존제와 나보이 등이 페르시아 문학을 꽃피웠죠.
특히 15세기 초 헤라트를 중심으로 벌어진 문예부흥운동인 티무르 르네상스는 중앙아시아 문화사의 최대 성기로 꼽힙니다. 문학뿐 아니라 회화, 서예, 사본 예술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죠.
3. 제국의 쇠락과 사마르칸트
수난 광채를 뿜어내던 티무르 제국도 영원할 순 없었습니다. 1405년 티무르의 죽음과 함께 제국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죠.
티무르의 손자 울룩벡이 잠시 제국을 추스르지만, 이후 후계자 간 다툼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15세기 중엽 들어 우즈베크족이 일으킨 반란으로 급기야 왕조가 무너지고 말았어요.
제국이 쇠퇴하면서 사마르칸트의 영화도 스러져갔습니다. 16세기에는 우즈베크 3부족 간 항쟁으로 도시가 수차례 함락되며 폐허가 되다시피 했죠.
17세기 들어서는 부하라가 중앙아시아의 새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사마르칸트의 지위도 격하되고 맙니다. 찬란했던 실크로드 무역도 쇠퇴의 길을 걸었고요.
이후 사마르칸트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소강상태에 접어듭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지배 아래 들어가 투르키스탄 총독부의 일부가 되죠.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우즈베키스탄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됐고요. 1991년 우즈베키스탄 독립 이후에야 비로소 옛 영광의 재현을 꿈꾸게 됩니다.
4. 실크로드 문명
꽃피운 유산을 찾아서 오늘날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이자 관광도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티무르 시대 건축물들은 오랜 세월 풍파에도 건재하며 옛 제국의 영화를 전해주고 있죠. 티무르의 묘가 있는 구르에미르 사원과 거대한 이슬람 사원 비비하눔은 도시의 상징과도 같아요.
실크로드 최대의 법학교였던 울룩벡 마드라사 역시 레기스탄 광장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죠.
천문학자 술탄이었던 울룩벡이 세운 천문대의 웅장한 모습에선 당대 과학 기술의 진수를 만날 수 있어요. 인근의 샤히 진다 네크로폴리스에선 티무르 왕조의 능묘들이 죽음의 미학을 들려줍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우즈베키스탄 곳곳에 산재한 유적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네요.
히바와 부하라, 샤흐리사브스 등 실크로드 도시국가들엔 찬란한 문명의 발자취가 서려 있거든요. 화려한 타일 벽화와 모자이크, 조각상들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수놓은 예술혼의 경이로움을 실감케 합니다.
사마르칸트와 티무르 제국의 역사는 이처럼 중앙아시아를 넘어 동서양 문명교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정복자의 칼날이 휘두른 폭력의 상흔 위로, 실크로드가 꽃피운 문화의 넝쿨이 화려하게 피어났던 무대. 그 진한 감동을 추억하며 유적지를 거닐다 보면 문명의 교차로에 선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벅참이 밀려옵니다.
사마르칸트와 티무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다음 콘텐츠를 추천해드려요.
책 – 『사마르칸트의 푸른 돔』 쿠르반 사이드 지음, 최미경 옮김 (책과함께, 2006)
20세기 우즈베키스탄을 배경으로 한 소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도 사마르칸트의 영혼은 살아 숨 쉰다!
영화 – 『태양의 제국』 Day Watch (2006)
티무르의 일대기를 그린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합작 사극 영화. 중앙아시아 역사의 파노라마가 웅장하게 펼쳐집니다.
여행지 –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
실크로드 교역으로 번성했던 사마르칸트의 심장부이자 티무르 제국 건축미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중앙아시아를 휘어잡은 철혈 군주이자 예술의 후원자였던 티무르. 그가 꿈꾸었던 제국은 오래가진 못했지만, 사마르칸트에 깃든 위대한 업적만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폭력과 약탈로 얼룩진 정복 전쟁의 그늘을 지우고, 문화 꽃을 피우려 한 티무르의 치적을 기리는 일. 그것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시대를 연 한 인물에 대한 공정한 조명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사마르칸트의 영광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실크로드 文明이 꽃피운 다양성과 창의성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죠.
찬란한 푸른 돔과 벽화, 첨탑에 투영된 동서양의 혼, 그것은 격동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계를 품은 관용과 개방의 지혜가 시간의 격류 속에서 영원한 가치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역사 무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광활한 초원과 사막, 실크로드를 누빈 상인과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티무르 제국과 사마르칸트가 남긴 깊은 여운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대 문명의 십자로에서 꽃피웠던 영광의 순간들, 거기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지혜의 메아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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