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문명은 인더스 문명과 아리아인의 시대를 지나 고전기에 접어들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웁니다.
그 중심에는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을 일궈낸 마우리아 왕조와, 고전 시대의 절정기를 이끈 굽타 왕조가 있었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예술과 종교, 학문이 발달하면서 인도 고유의 문화가 熟成되는 시기였습니다.
두 제국이 빚어낸 인도 고전 문명의 정수를 만나보실까요?
1. 마우리아 왕조, 최초의 인도 통일 제국을 세우다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인도 아대륙은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인데요.
그는 마가다 왕국을 무너뜨리고 기원전 321년, 마우리아 왕조를 세웁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에서 벵골 만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아우르며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이 탄생한 것이죠.
마우리아 제국의 전성기는 아소카 왕 때였습니다. 잔인한 칼링가 전쟁 후 참회한 아소카는 불교로 귀의하여 왕국에 자비로운 정책을 폈는데요.
왕국 곳곳에 불교 사원을 건립하고 법칙을 새긴 석주를 세워 왕의 교화를 선포했죠. 산치 대탑 같은 불교 유적이 이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소카는 남인도와 스리랑카까지 불교 포교에 힘썼고, 이는 인도 및 동남아 지역으로 불교 전파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 제도로는 고대 그리스의 메가스테네스가 칭송했던 행정조직이 특징인데요. 황제 직속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운영했고, 각 주에는 총독을 파견해 통제력을 높였습니다.
상비군과 정보원, 세금 징수 체계 등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백성들의 삶까지 관장하는 절대군주제에 가까웠죠.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가 안정된 통치의 밑바탕이 되어준 셈입니다.
2. 굽타 왕조, 고전 시대를 절정으로 이끌다 마우리아 왕조 이후 인도는 다시 분열의 시대를 겪게 됩니다.
서북쪽에선 그리스계 왕조가, 서쪽에선 사카족과 쿠샨족 등 유목민들이 건너와 세력을 떨쳤는데요. 이질적 문화의 유입은 인도 문화를 한층 풍성하게 해주었지만 정치적으론 혼란기였죠.
이때 등장한 새로운 통일 왕조가 바로 굽타 왕조입니다. 4세기경 마가다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굽타 1세가 선두에 서서 주변 왕국들을 정복한 것이 그 시작이었는데요.
굽타 제국은 5세기 찬드라굽타 2세 때 전성기를 맞습니다. 데칸고원 남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을 지배하며 마우리아에 버금가는 대제국으로 군림했죠.
굽타 시대에는 힌두교가 부흥하고 문학과 예술, 학문이 꽃을 피웁니다. 산스크리트 문학이 전성기를 맞아 시인 칼리다사가 『샤쿤탈라』를 썼고, 시성 바르트리하리도 이때 활동했죠.
아잔타 석굴사원을 비롯한 불교 건축과 조각 예술이 절정에 달했고, 힌두 신전 건축도 활발했습니다.
이 시기에 이뤄진 예술적 성취는 훗날 동남아 지역으로 전파되어 광범위한 문화권을 형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과학 분야에서도 눈부신 발전이 있었는데요. 수학자 아리아바타는 원주율과 삼각함수를 사용했고, 천문학자 바라하미히라는 행성 운동에 관한 논문을 남겼죠.
의학에서는 수슈르타가 외과수술의 기틀을 세웠고, 천연두 예방접종법도 시도되었다고 합니다.
0이라는 개념과 10진법도 인도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건데, 이는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서양에 전해져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숫자 체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6세기 중엽 훈족의 침입으로 굽타 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후 인도는 또다시 여러 지역 국가로 분열되는데요. 하지만 굽타 제국이 남긴 문화유산은 인도 문명의 고전을 이루며 현대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도 미술의 규범이 되는 양식들, 힌두교 신전 예배의 의례집인 『아가마』 등이 굽타 시대에 체계를 잡았고, 특히 힌두 사상 경전인 『푸라나』가 집대성되면서 힌두교는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3. 인도 고전 문명이 남긴 유산 인도 고전기를 관통하는 정신적 지주는 단연 종교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아소카 왕을 통해, 힌두 전통은 굽타 제국을 통해 꽃을 피웠죠. 깊고 비밀스러운 숲의 종교에서 도시와 대중의 종교로 그 면모가 바뀐 것인데요.
석굴 사원과 스투파에서 5~7세기 시크 신전에 이르기까지 건축물에서 읽히는 각 시대정신의 변화상이 인상적입니다.
종교가 꽃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안정된 통치 체제와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어요.
제국의 보호 아래 국제 무역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상인과 장인 계급이 성장한 것이 주효했죠.
아잔타 석굴 벽화에서 보듯 당시 일상의 풍경은 제법 윤택해 보입니다. 문화예술 발전의 물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었죠.
여기에 헬레니즘과 페르시아 문화가 더해지면서 인도 문화는 한층 다채로워집니다. 간다라 지역에서 발달한 그레코 불교 예술이 대표적이에요.
특히 입상의 불상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는데, 이는 동아시아 불교 미술의 시원형이 되었죠.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꽃피운 관용과 포용의 미학이라 할 만합니다.
4. 마우리아·굽타 왕조 관련 추천 콘텐츠
책 – 『인도 문명사』 김인규 지음 (사계절, 2003) : 인도 문명의 기원부터 이슬람 시대까지 통사적으로 정리한 개설서.
유적 – 산치 대탑 : 마우리아 시대의 대표 불교 유적. 아소카 왕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석조 스투파.
다큐멘터리 – BBC 『The Story of India』 (2007) : 인도 문명의 역사를 유적 답사와 함께 조명한 6부작 다큐멘터리.
전시 – 국립중앙박물관 『인도 문명전』 (2022) : 인도 문명의 시원부터 현대까지 문화유산을 총망라한 특별전.
이렇듯 고대 인도에서 빛나는 황금기를 이끈 두 제국의 이야기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안정과 통합을 되찾고, 경제적 번영을 토대로 문화의 르네상스를 일궈낸 시기. 지금 우리가 아는 인도 문명의 큰 틀이 마우리아와 굽타 시대에 마련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네요.
인도사에서 마우리아와 굽타 제국이 남긴 유산은 실로 찬란합니다.
종교와 예술, 학문의 발전, 그것을 뒷받침한 정치경제적 기반까지. 제국 통치의 경험은 자칫 서로 분열되기 쉬운 인도 아대륙을 하나로 아우르는 토대가 되어주었죠.
통합과 발전의 역사 속에서 인도인들은 “바랏(Bhārat)”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민족 정신의 원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명의 교차로 인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우러지고, 종교와 사상이 꽃피운 문명사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도 문명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인종과 언어,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는 문화다양성의 모델. 그 실마리는 멀리 마우리아와 굽타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굴 안에 반짝이는 벽화를 바라보노라면, 인도인들의 예지와 창의가 비로소 틔워나던 순간의 감동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산치에 우뚝 선 석주를 마주하면, 제국의 위용과 불법의 자비가 공명하는 울림이 들리는 것만 같고요.
유구한 역사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감흥, 바로 인도 고전기와의 만남이 선사하는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인도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아잔타와 엘로라, 산치와 사르나트를 직접 찾아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석굴 벽화와 불상, 석주에 어린 장인들의 혼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을 테니까요. 견고한 돌에 새긴 찬란한 기억의 편린들.
고전기 인도인들의 역사의식이 응축된 공간에서 제국의 영광을 느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역사는 먼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죠.
오늘날 인도가 직면한 빈곤과 차별, 종교 갈등의 민낯을 돌아볼 때도 그렇고요. 제국사의 이면에 감춰진 서발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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