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안에서 비단과 도자기를 싣고 출발한 상인들은 파미르 고원과 사막을 넘어 페르시아와 콘스탄티노플에 닿았습니다.
반대로 서역의 유리그릇과 양탄자, 청동 장신구는 비단길을 거슘하여 동방의 오아시스로 흘러들어갔죠.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한 실크로드. 그것은 단순한 무역로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이자 문화가 꽃피운 무대였기에요.
삼국시대 월지에서 당나라 반고, 그리고 티무르 제국에 이르기까지. 실크로드를 통해 빚어진 찬란한 문명의 향연을 만나보겠습니다.
1. 동서 교역로의 형성
헬레니즘 문화의 전파 본격적인 동서 교류는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의 장건이 대월지에 파견되면서 시작되었어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길이 열리고, 한대 말에는 로마까지 연결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교역망이 형성됐죠. 초원길, 오아시스길, 해상길 등 여러 노선이 발달했는데 비단 무역이 가장 활발했던 오아시스길이 실크로드로 불리게 됐습니다.
물자의 이동과 함께 사상과 문화의 전파도 활발해졌어요. 특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들어오면서 그 영향이 본격화됐죠.
그리스 조각과 건축 양식은 간다라와 크샤트라파 미술을 탄생시켰고, 불교 예술에도 반영되어 서역의 옷을 입은 부처님 입상이 등장합니다. 불교 경전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는가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 모티프가 석굴 벽화를 수놓기도 했죠.
동서 문물의 교류는 출토 유물에서도 확인됩니다. 박트리아의 옛 도시 아이 카눔에선 그리스 양식의 체육관과 극장이 발굴됐고, 로마의 금화와 유리잔이 출토되기도 했죠.
신장의 니야 유적에선 인도 브라흐미 문자로 쓰인 문서가, 이집트의 미라 장식에선 중국 비단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로마 귀족들이 중국산 비단 옷을 입었다는 기록은 문명 교류의 폭을 짐작케 하죠.
2. 불교의 동진과 석굴 사원
세계 실크로드 교역은 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을 동아시아에 전해주는 매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월지와 파르티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급속도로 확산돼 나갔죠. 수나라 현장법사의 인도 순례는 불교 동전의 상징적 사건이에요.
경전과 불상, 승려의 이동은 물론 석굴 건축술의 전파를 통해서도 불교 문화는 꽃을 피웠습니다.
중국 윈강과 룽먼, 인도 아잔타,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등지에 조성된 대규모 석굴 사원들. 이는 실크로드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들이에요.
특히 4-6세기 굽타 양식과 당대 불교 미술이 꽃피운 윈강 막고굴의 정교한 벽화와 조각상들은 실크로드 예술 교류의 절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슬람교의 동진 역시 이 시기에 본격화됩니다. 8세기 이후 우마이야 왕조의 중앙아시아 진출과 함께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산이 이슬람 문화에 수용되면서 실크로드는 또 다른 종교예술의 무대가 되었죠.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히바 등 티무르 왕조의 모스크와 메드레세는 페르시아와 투르크 양식이 빚어낸 걸작들입니다.
3. 당과 이슬람 문명의 교차
동서양의 문화가 꽃피다 7세기 당나라의 건국은 동서양 교류에 새 지평을 열었어요. 역법과 의학, 천문학 등 서역의 학문이 당에 소개되고, 페르시아와 토카라의 음악과 무용이 실크로드를 타고 장안에 들어왔습니다.
상인과 유학생, 종교인 할 것 없이 각국의 사신들이 몰려들며 국제도시로 변모한 장안. 세계 각지의 문물이 오가는 이 활기찬 광경은 당시를 대표하는 풍속화 ‘조창도’에 생생히 담겨 있죠.
이 시기 동서 문화의 만남은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가시화됩니다. 서역에서 건너온 설화가 『전기문』에 수록되고 이국적 취향을 담은 변새체가 유행하죠. 도교와 불교가 융합된 당밀 문화에선 장생불사를 갈망하는 도사와 신선 이야기도 크게 유행합니다.
8세기 중엽 이후에는 이슬람 제국이 등장하며 새로운 문화 교류의 장이 열립니다. 당과 이슬람 문명의 접점에선 페르시아 문화의 중흥이 돋보이는데요.
투르크인이었던 셀주크가 문예를 적극 후원하면서 페르시아어가 문학어로 발전하죠. 시인 피르도우시가 페르시아 영웅서사시 『샤나메』를 남긴 것도 이때입니다.
4. 몽골 제국 시대
동서양을 잇는 교두보가 되다 13세기 칭기스칸이 유라시아를 석권하면서 실크로드는 몽골의 중심 무대가 됩니다. 정복 전쟁 과정에서 역참망이 정비되고 무역이 더욱 활발해졌는데요.
이른바 “pax mongolica”, 몽골의 평화가 찾아온 거죠. 실크로드는 동서양을 잇는 문화 교류의 대동맥으로 부상합니다.
쿠빌라이 칸이 세운 대도는 각국 상인과 종교인들이 모여드는 국제도시로 명성을 떨쳤어요. 마르코 폴로와 같은 탐험가들이 제국의 관료로 등용되기도 했죠.
각국의 학자와 예술가가 운집한 일칸국의 수도 타브리즈는 ‘동방의 아테네’로 불리며 문화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특히 이 시기 색목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는데요. 투르크, 페르시아, 위구르 등 서역 출신 무역상인과 기술자들이 각지에서 문화 전파의 매개 역할을 한 것이죠.
이들을 통해 모시 공예와 카펫 직조술, 琉璃 제작법 등이 중국에 건너왔고, 페르시아 등 서아시아 건축의 돔과 아치 양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몽골의 통치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관용의 전통을 남겼어요. ‘달과 같이 영원할지어다’란 뜻의 술어 ‘suu jali’엔 샤머니즘 신앙과 불교, 기독교가 혼재된 몽골의 종교관이 담겨 있죠.
쿠빌라이는 파스파 라마를 등용해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삼았고, 페르시아의 일 칸국에선 이슬람교가 융성했죠. 몽골 지배층의 다종교 포용 정책은 실크로드의 문화다양성을 더욱 증진시켰어요.
5. 동서 문명 교류의 유산
실크로드는 근대에 이르러 쇠퇴의 길을 걷지만, 교류의 정신만큼은 면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나 유엔의 실크로드 프로그램 등이 그 연장선에 있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 소통의 가교로서 실크로드가 갖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최근 활발해진 실크로드 종단 여행이나 영상 콘텐츠들도 그런 관심을 반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실크로드 문명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볼까요? 중국 둔황의 막고굴과 투르판 천불동,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 이란 이스파한의 이맘 광장 등은 그 절정을 느낄 수 있는 대표 유적이에요.
간헐적으로 열리는 실크로드 문명전 같은 박물관 특별전도 주목할 만합니다.
동서를 잇는 문화의 대동맥, 실크로드. 그 1천 년의 장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새길 교훈은 무엇일까요? 배타성을 넘어선 문명의 소통, 다양성이 꽃피운 관용의 전통은 여전히 유효한 화두가 아닐까 싶어요.
작금의 글로벌 질서 속에서 동서양의 갈등과 반목이 거세지고 있지만, 실크로드의 정신을 되새길 때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지혜, 그 길 위에 인류 보편의 가치가 꽃피울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실크로드에 관해 더 알아보려 좋은 책과 콘텐츠를 소개해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책 – 『실크로드』 발터 M. 바이어 지음, 심재중 옮김 (가람기획, 2000)
동서 교류의 통로이자 문명의 길, 실크로드 2천년사를 한 권에 담아낸 필독서.
다큐멘터리 – EBS 『실크로드 대기행』 (2005)
11개국 8만km를 종단하며 실크로드 문명을 탐사한 대작 다큐멘터리. 동서양의 문화가 빚어낸 장대한 교향곡을 스크린에 담아냈어요.
전시 –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의 삶과 예술』특별전 (2017)
실크로드 문명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은 진풍경. 국보급 문화재 300여 점을 통해 실크로드 예술을 조명했습니다.
여행지 – 키르기스스탄 이식쿨호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중앙아시아의 보석. 탕그리 유목민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고원 호수로 실크로드 탐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역사는 때로 우리를 먼 시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비단길 위에 오르는 기분, 어떠신가요?
낙타 카라반을 따라 사막과 초원, 오아시스를 종횡무진하다 보면 동서 문명의 교차로에선 설렘을 만끽하게 될 거예요. 실크로드를 수놓은 예술과 지혜의 보석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한껏 풍요롭게 해줄 테니까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교류와 소통의 가치는 인류 보편의 준칙이라는 점입니다. 배타성과 편견의 장벽을 허물 때 비로소 문명은 꽃을 피울 수 있어요. 그 소중한 유산이 천년을 관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마주하는 담대함, 다름 속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혜안.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실크로드를 거닐며 우리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문명은 교류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는 깨달음 말이에요.
비단길 위에서 꽃피운 찬란한 문화유산들은 우리 인류가 함께 일군 소중한 자산이자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 빛나는 궤적을 오늘에 되살리는 지혜, 바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아닐까요?
긴 여정 끝에 동서양의 문명이 융화되어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 설렘. 머나먼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인류애를 발견하는 감동. 실크로드 역사 속에서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읽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상생과 공존의 정신, 그 원대한 꿈을 21세기 실크로드 위에 새롭게 투영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 모두가 이 설레는 모험에 동참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아낌없이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 역시 이 아름다운 문명기행을 함께 할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 위에서 빛나는 만남의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향한 바람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 바람을 꿈꾸는 여러분의 마음속엔 이미 실크로드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을 거예요. 현실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그 정신만큼은 늘 되새기며 나아가는 우리이길 소망합니다.
다음 역사기행지는 또 어디쯤 될까요? 어디로 갈지 궁금하고 설레는 여러분의 마음을 제 글이 조금이나마 흔들어 줬기를 바라봅니다. 실크로드의 순례자가 되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다음 여행길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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