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단군 왕검에 의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록된 단군신화에 따르면,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고, 그의 아들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던 시기로,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청동기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 등이 발견된 지역이 고조선의 영역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군 신화는 단순한 건국 설화를 넘어 한민족의 시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문화적 코드입니다.
이 신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며,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지향하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신화가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후대에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시기 | 주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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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33년 | 단군왕검 고조선 건국 (전설) |
기원전 1122년경 | 기자가 조선에 왔다는 기록 (기자조선 설) |
기원전 3세기 |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입 |
기원전 194년 | 위만의 고조선 왕위 찬탈 |
기원전 109-108년 | 한-조선 전쟁 |
기원전 108년 | 고조선 멸망, 한사군 설치 |
고조선의 영토는 초기에는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점차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북부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위만조선 시기에는 ‘진번’과 ‘임둔’까지 복속시키며 그 세력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고조선의 중심지는 지금의 평양 부근으로 추정되며, 왕검성(王儉城)이라 불렸습니다.
고조선의 정치체제는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구조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8조법’으로 알려진 법률 체계입니다.
『한서(漢書)』 지리지에 따르면, 고조선에는 살인, 상해, 절도에 관한 법률이 있었고, 이는 초기 국가의 법체계가 상당히 발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속죄하려는 자는 50만전을 내게 하는 등의 법률이 있었습니다.
고조선 사회는 계층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과 귀족, 평민, 노비로 구성된 사회에서, 귀족들은 주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부족장들이 연합하여 초기 국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고조선의 문화적 특징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발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미송리식 토기 등이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특히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어 고조선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고인돌(고조선식 적석총)도 고조선 문화의 특징적인 유적입니다.
고조선인들의 신앙은 애니미즘(정령신앙)과 샤머니즘적 요소가 강했으며, 천신 숭배 사상이 있었습니다.
10월 무렵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농경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기원전 194년경, 중국 연나라 출신의 위만이 고조선의 왕위를 찬탈하며 위만조선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위만은 천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에 망명한 후 변방의 수비를 맡았다가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만조선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서 상당한 세력을 떨쳤으며, 중국의 한나라와 한반도 남부의 진국(辰國)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번영했습니다.
위만조선의 마지막 왕인 우거왕 때에는 한과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한나라는 고조선이 한의 사신을 살해하고 남쪽 진국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는 구실로 기원전 109년에 육군과 수군 총 7만 명을 동원해 고조선을 공격했습니다.
1년여의 전쟁 끝에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결국 한나라에 정복되었고, 그 영토에는 낙랑, 진번, 임둔, 현도 등 4개의 군현이 설치되었습니다.
고조선은 한반도 최초의 국가로서 이후 한국 역사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고조선의 정치체제와 법률 시스템은 초기 국가 형성의 중요한 모델이 되었으며, 그 문화적 전통은 후대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실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을 청동기 시대의 연맹체로 보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보다 발달된 형태의 초기 국가로 해석합니다. 또한 단군 신화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는 고조선의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을 비롯한 다양한 청동기 유물과 고인돌 등의 발견은 고조선 문화의 특징과 범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